나는 대학교 8학년이다.
나는 초등학교보다 대학교를 2년이나 더 오래 다녔다.
태어나고 6살부터 20년 넘게, 내 인생의 70%를 공부만했다.
라고는 못하는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후회되는 것이 많다.
20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다들 그런다
코로나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친했던 친구들도 이제 1년에 한번 보면 다행이고,
집과 연구실, 그리고 과외를 반복하는 일상에 지쳐 좋아하던 게임도 안하게 되었다.
아무튼, 별거 없는 평범한 대학원생이 제일 먼저 후회하는 것은
서울대 오면 다 되는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대 말고 붙은 데가 없었다.
호기롭게 선택한 물리 2덕분에 수능도 시원하게 말아먹고, 패기로 수시는 SKY만 써서 덕분에 고대랑 연대도 다 떨어졌다.
근데 왠지 모르게 서울대에 덜컥 붙은 것이다.
처음 서울대에 들어오고 나서 정말 온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다.
리그오브레전드 아이디도 서울대식프리딜로 바꿨다 물론 1년을 못 갔다.
서울대 과잠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과외도 가기도 하고,
과잠을 입고 서울대가 아닌 동네 길거리를 걸으면 괜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들어간 학교라서 더 그랬었다.
보통 1년이면 다들 정신 차리고 군대도 갔다 오면서 어른이 되서 오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1년, 2년 지나면서 일단 서울대 오기만 하면 다 되는 것만 같았던 내 계획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두번째 후회하는건
남들 의견을 너무 들었던 것이다
칭찬을 들으면 그날은 계속 기분이 좋은 날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시무룩했었다.
사랑을 받음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잘 하는걸 찾으려고 애썼다.
술을 마셔봤다. 더럽게 못 마셨다.
한 병이면 필름이 끊기는 가성비 끝내주는 몸으로 험한 공대 생활을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걸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롤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프로게이머도 자주 만나고 마스터 티어도 찍어 가면서 사실상 수능공부보다 게임을 더 잘했다.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나를 보면 먼저 게임 잘하는 애로 알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게임했다.
그러면서도 군대는 가기 싫어서 대학원으로 도망치듯 갔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 대학교 8학년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온 지 8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지금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 의미 없는 op.gg 전시즌 성적표와 학자금 대출,
그래도 그동안 최소한은 하자 하며 들었던 대학원 수업들이 나를 겨우겨우 붙들고있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모자른 사람이지만 곁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항상 배울 점을 알려주었다.
서울대 와도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있는 학교였을 뿐이다.
성공한 부자들이 다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졸업장은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배울 수 있었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대학교 8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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