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보는 일상/주저리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거야 [이기적 유전자]

Kludge 2021. 9. 12. 12:05

빠르게 바뀌는 요즘 세상에서 오래된 과학 고전은 정말 드물다.

1976년 발매 이후 45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포스트이다.

 

 

진화라고 하면 흔히들 혼동하는 것이 내 몸에서 날개가 돋아난다거나,

갑자기 운동 능력이 상승한다거나 하는 개체 수준에서의 진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디지몬, 포켓몬에서 진화라는 단어를 처음 듣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진화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유전자의 탈것인 개체가 생존(번식)에 성공하지 못해 도태되면서

환경에 적응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겉보기 현상을 진화로 정의하고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는 마치 이기적 으로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불사하는 생존 기계 인 육체(개체)를 조종하는 파일럿 처럼 보인다.

실제로 유전자가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자연 선택에 의해 서 생존하지 못한 유전자가 제거되면서 생기는

"겉보기" 현상인지 모른다는 관점을 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도킨스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한다는 뉘앙스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이 관점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도 독자에게 맡기면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자 했다.

아마 그가 보기에도 그가 해석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과 같은 인간의 덕목들이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진화의 결과라고 해석되어버리는 것이

충분한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던 것이다.

 

무기물에 번개, 자외선, 지각활동 등의 이유로 순간적으로 높은 에너지가 가해져서 순간적으로

수프와 같은 유기물(원시 수프)에서 단백질이 생성되었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최초의 자기 복제 성향을 가진 유기체가 발생하면

자기 복제 성향을 가지지 않은 유기체보다 많은 복제품(자손)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계에 발생하는 많은 현상들이 왜 다른 전략들보다 우수(자연에 적응) 하여

(한정된 자원을 공유할 경쟁자를 제거하고)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지금까지 존재 (생존) 하게 되었는지, 지금 우리가 자연계 (혹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협력, 이타성, 암수간 갈등, 가족, 심지어 사랑까지도)들을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이기적이지 못한 개체는 생존하지 못해 자손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어도 다소 충격적인 책이다.

충격적인 이유는 그의 주장대로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상들이

이기적 유전자 가정 하나로 설명되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여러 동화 책이나, 어렸을때 부터 꿈꿔왔던 행복한 가정과 같은 이미지들과

정 반대되는 것들만이 오히려 생존하기 유리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여태까지는 다소 비관적인 내용을 다루었으나

책은 이렇게 낙관론적인 논조를 띄며 마무리한다.

마치 데카르트의 이원론(몸 vs 정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도 이기적 유전자 주장은 데카르트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비평을 받지만, 도킨스가 주장하는 통계적인 경향성을 무시할 근거가 되지는 않으며, 논조를 벗어난 비판이다.)

 

 

 

아름다운 것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도 한다.

오히려, 유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대가 없는 친절과 사랑,

조건 없는 희생

 

이것이 아름다운 것은 친절과 사랑, 희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음에 있다.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그것들은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 아닐까.